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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care

미국 의료의 새로운 방향: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Care)란?

by yimjang 202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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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기대수명과 예방 가능한 사망률과 같은 주요 건강 지표에서는 선진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은 1인당 의료비 지출이 다른 선진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의료의 질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은 4.5조 달러에 달하는 의료비를 지출했으며, 이는 인구 1인당 13,493달러, 전체 GDP의 17.3%에 해당한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전통적인 수수료 기반 모델(Fee-for-Service, FFS)의 한계를 드러내며,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Care; VBC)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가치 기반 의료는 의료 제공자에게 서비스의 양이 아닌 환자의 건강 결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모델로, 의료비 절감과 환자 건강 향상을 동시에 목표로 한다. 특히, CMS(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는 메디케어 프로그램을 통해 가치 기반 의료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1,300만 명의 메디케어 수혜자가 이 모델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이는 전체 메디케어 가입자의 약 40%에 해당한다. 이번 글에서는 가치 기반 의료의 원리, 환자와 의료 제공자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 직면한 도전과 향후 전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가치 기반 의료란 ?

기존 FFS (Fee-For Service; 수수료 기반 모델)은 의료 제공자가 수행한 진료 및 검사 횟수에 따라 보상을 받는 구조다. 이는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종종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유발한다. 이로 인해 의료비는 급증하고, 환자들은 과잉 진료의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환자 결과와는 무관하게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가치 기반 의료는 환자의 건강 결과와 비용 효율성을 중심으로 보상 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의료 제공자는 환자의 장기적인 건강을 개선하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 집중하도록 유도된다. 이 모델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결과 중심의 보상: 제공자는 환자의 치료 결과, 만족도, 및 비용 절감 정도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 예방 중심의 접근: 환자가 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예방적 진료와 만성질환 관리에 중점을 둔다.
  • 협력과 통합: 여러 의료 제공자들이 협력하여 환자 중심의 통합된 치료를 제공한다.

환자의 위험도에 따른 보상, 의료비 절감액 공유

VBC의 보상체계 핵심은 위험 조정(Risk Adjustment) 모델에 있다. CMS는 의료 제공자가 고위험 환자를 돌보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환자의 만성 질환과 위험 요인을 평가해 환자의 위험 점수(Risk score)를 산출하고, 이에 따라 비용을 보상한다. 예를 들어,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 환자를 돌보는 의료 제공자는 일반 젊은 환자에 비해 몇 배 높은 보상을 통해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

또한 가치 기반 의료 모델에서는 제공자가 의료비를 절감하고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면 절감된 비용의 일정 비율을 공유한다. 반대로, 성과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CO(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모델에서는 전년 대비 관리 비용을 줄이고환자의 건강 결과를 유지한 경우 절감액의 일부를 의료 기관이나 보험사와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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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더 건강하게, 병원은 성과 기반 보상으로 효율성 증대

가치 기반 의료는 환자 중심의 치료 모델을 통해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삶의 질을 개선한다.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 정기적인 관리와 예방적 접근을 통해 질병이 악화되기 전에 문제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일례로, 메디케어의 Hospital Readmissions Reduction Program(HRRP)는 2012년부터 시작되어 병원 재입원율을 줄이는데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도입 이후 30일 재입원율이 13% 감소했고, 이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JAM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CO 모델에 참여한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1인당 약 1,000달러를 절감했다. 이는 예방적 관리와 정기 검진 덕분에 응급실 방문과 입원 횟수가 감소한 결과다. 당뇨병 환자가 정기적으로 혈당 수치를 관리하고 영양 상담을 받으면 합병증 발생률이 크게 줄어들어, 고비용 치료를 피할 수 있다.

의료 제공자들에게 가치 기반 의료 모델은 성과 기반 보상을 통해 더 나은 치료 전략을 개발하고 환자 중심의 진료를 제공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디케어 ACO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료 제공자는 환자 관리에서 비용 절감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절감액의 최대 50%를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의료 팀 간 협력을 통해 환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여 중복 진료를 줄이고, 환자 맞춤형 치료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도전 과제는?  상호 운용성(Interoperability) 확보, 적극적 참여 유도

가치 기반 의료를 성공적으로 구현하려면 전자 건강 기록(EHR) 시스템과 같은 기술적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많은 의료 기관은 다양한 시스템 간의 상호 운용성 부족으로 인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한 병원의 EHR 시스템에서 기록된 데이터가 다른 병원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면, 환자가 여러 의료 제공자에게 진료를 받을 때 정보가 누락되거나 중복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 문제는 특히 소규모 의료 제공자에게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기술 통합은 가치 기반 의료의 주요 장애물로 남아 있다.

한편 기존의 FFS모델에 익숙한 많은 병원과 의사들의 저항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FFS에서 VBC로의 전환은 의료 기록의 작성과 관리부터 진료 계획까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VBC는 초기 투자와 긴 학습 곡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FFS 모델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CMS를 필두로 한 미국 정부기관은 가치 기반 의료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점차 더 많은 병원과 보험사가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AI를 통한 데이터 분석 등의 기술 발전은 가치 기반 의료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는 의료비 절감과 환자 건강 증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