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야심차게 출범한 헬스케어 벤처 헤이븐(Haven)은 설립 3년만인 2021년 2월 문을 닫았다. 아마존(Amazon),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JP 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등 세 대기업의 합작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투명하고 퀄리티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던 큰 목표는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120만명에 달하는 직원과 막대한 시장 지배력으로도 성과를 내지 못해, 헬스케어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과 난이도를 새삼 증명한 셈이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는 헤이븐의 실패 사유를 1. 협상력의 부족, 2. 인센티브의 부재, 3. (코로나로 인한)시기의 불운을 꼽았다.

전국에 분산된 120만 직원, 의료비 협상에 한계

알려진대로 미국의 의료 시장은 주(state) 혹은 카운티(county) 마다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통일된 수가 적용이 아니라, 보험사들이 해당 지역의 병원/의사들과의 계약을 통해 수가를 정하는 것인데, 때문에 해당 지역에 가입자가 많을수록 보험사는 협상력을 가지게 된다. 아마존, 버크셔 해서웨이, JP모건 체이스의 직원은 120만 명을 넘지만 미국 전역에 퍼져 있어 지역별로는 충분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의료비를 크게 낮추지는 못했다.

병원에게 안전한 현재 지급 모델에서 변화할 인센티브 부족

진료별 지불(Fee-for-service) 모델에서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care) 모델로의 전환은 지난 수년간 미국 헬스케어 시장의 화두였다. 진료별로 수가를 지급하는 기존의 모델은 병원들이 질병을 예방하기보다는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더 집중하도록 했고, 과잉 진료와 불필요한 입원 치료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져 의료비용의 폭발적인 상승을 야기했다. 이에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두 개의 공공 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인 CMS는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라 정해진 금액만을 지급하고 보험사와 병원이 이 비용을 활용해 건강관리에 힘쓰도록 하는 가치 기반 의료 모델로 전환하려 여러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병원들은 안전한 진료별 지불 모델을 선호하고 있어 변화의 속도가 더디고, 이는 헤이븐에게도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코로나 사태로 새로운 계획 전면 중단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계획은 중단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환자 치료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게 되면서 헤이븐의 시도 역시 힘을 잃었다. 끝이 어딜지 모를 코로나 상황으로 헤이븐은 예상보다 빨리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기업들의 합작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출범한 헤이븐은 결국 헬스케어 시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교훈을 남기고 실패로 끝났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의료 체계 해결책을 고민한 결과 1차 진료에 대한 접근성 향상, 보험 적용 간소화, 간편 처방약 구입 등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 헤이븐에 참여했던 세 회사는 앞으로도 비공식적인 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헬스 전문 투자사 락헬스(Rock Health)의 리포트 중 디지털 헬스 플랫폼들의 방향성에 대해 다룬 흥미로운 리포트가 있어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원문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 텔라닥(Teladoc)과 리봉고(Livongo)의 메가 M&A 소식(텔라닥이 리봉고를 185억 달러에 인수)은 디지털 헬스 분야의 지각 변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스타트업을 넘어 기존의 거대한 기업들과 경쟁할 플레이어의 등장을 알림과 동시에, 원격의료 분야가 주류로 올라섰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플랫폼 기업들은 빠르게 진화하고 공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앞으로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헬스 플랫폼을 그 사업 모델에 따라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다. (*번역은 최대한 의미가 통하도록 의역했다.)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care management platforms) : 특정 질환 관리에 초점을 둔 플랫폼으로 주로 만성 질환을 다루고 있다. 당뇨 관리에 집중하는 Virta Health, 여성 질환 전문 Maven Clinic, 당뇨, 고혈압, 근골격 질환을 주로 다루는 Omada Health 등이 이에 포함된다.

온라인 처방 약국 (convenience care platforms) : 원격진료로 처방전 발급부터 처방약 배달까지 한 번에 제공하여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플랫폼으로, 초기에는 탈모나 편두통, 피임약 등에서 시작했다가 그 범위를 확대해 종합 온라인 약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Ro, Cove, Lemonaid 등이 이에 해당한다.

통합 원격의료 플랫폼 (Unified virtual care platforms) : 원격의료가 확대됨에 따라, 1차 의료(primary care) 뿐만 아니라 전문의를 연결해 질환 치료/관리까지 이어지는 모델로, 텔라닥이 리봉고와의 합병을 통해 시도하는 모델이다. 텔라닥에서 1차 의료를 받고, 당뇨 환자들은 리봉고를 통해 관리 서비스를 받는다.

옴니채널 건강 관리 (Omnichannel retail health platforms) : CVS, Walgreens 등 기존의 리테일 약국은 제휴와 확장을 통해 매장의 일부 공간에 1차 의료를 주로 하는 병원을 설치하고 있다. 이에 더해 원격 모니터링 장비들을 도입해 진단/검사부터 처방 및 처방약 조제, 만성질환 관리까지 한 울타리에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국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유통망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전자제품 판매점 Best Buy도 비슷한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대면진료 + 원격의료 결합 모델 (Integrated digital and physical care platforms) : 온라인과 오프라인 각각에 전문성을 지닌 기업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연속성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로, Ochsner 병원이 Hims와 제휴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IT 인프라 플랫폼 (Tech infrastructure platforms) :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스포스 등 대표적인 인프라 기업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그 방대한 데이터에 더해 원격의료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 시장의 큰 잠재력을 보여준다.

디지털 헬스 플랫폼들의 성장 전략은? 

기간망 (Infrastructure) 에 집중

몇년 전만 해도 유통망이나 기반 기술 등의 이유로 디지털 헬스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이런 기간망을 대신 구축해 스타트업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처방약을 대신 조제하고 배송해주는 Truepill 이 대표적인데, 온라인 약국으로 유명한 Nurx, Hims, GoodRx 가 모두 Truepill의 유통망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데이터 분야에서는 여러 시스템의 데이터를 취합/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통합 솔루션 회사들이 돋보이는데 Redox, Datavant, Particle Health 등이 대표적이다.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문제는 지난 수십년간 헬스케어 업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받아 왔던 만큼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생체신호(biomarker) 측정에 있어서는 애플 헬스 킷(Apple Health Kit)이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Elektra Labs 는 넘쳐나는 생체 측정 장비 중에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장비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핵심 고객의 사용자 경험(Consumer experience) 에 집중

다른 산업에 비해 헬스케어는 사용자 경험에 대한 관심이 늦었지만, 여러 스타트업들의 등장으로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보편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핵심 고객군을 설정하고 이들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Ro, Hims, Nurx 등은 특정 나이(20-40대)와 성별에 따라 탈모, 발기부전 (남성) / 피임, 피부관리 (여성) 서비스로 시작해 편의성을 높였다. Omada, Vida, Kaia 등의 회사들은 특정 질환(당뇨, 고혈압, 근골격 질환 등)에 집중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진료 전문성(Clinical expertise) 에 집중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에서 의료 서비스는 접근성이 낮기로 유명하다. 이에 플랫폼들은 접근성과 전문성을 무기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강조한다. Omada 와 Virta 같은 스타트업들은 자사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의 건강 상태가 크게 개선된 점을 부각하는데, 이는 Livongo가 이미 성공을 거둔 마케팅 방식이기도 하다.

내부 의료 자원이 부족한 회사들은 제휴나 인수를 통해 임상 역량을 강화하기도 한다. Best Buy는 온라인 긴급 의료 서비스  Great Call, 건강상태 모니터링 기업 Critical Signal Technologies 를 인수했고, Hims는 유명 병원인 Ochsner 과 Privia Health 과의 제휴를 통해 진료 역량을 강화했다.


코로나 판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디지털 헬스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전체 헬스케어 시장의 큰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플랫폼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진출이 계속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몇 개의 플랫폼들로 압축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 남다른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하게 될 지 관심가져볼 만 하다.

지난 12월 21일, 건강보험 스타트업 오스카 헬스(Oscar Health)는 회사 블로그를 통해 IPO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주식 가격이나 신주 발행 규모는 아직 미정이며 2021년 상반기 상장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오스카 헬스는 흔히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ACA(Affordable Care Act) 건강 보험을 주력으로 하며 메디케어 어드벤티지(Medicare Advantage)나 가족 보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8년 투자유치 당시 이미 기업 가치가 30억 달러를 넘어섰고, 레모네이드(Lemonade) 등 다른 보험 스타트업들이 상장 후 큰 폭의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Jared Kushner의 동생인 Josh Kushner가 투자자 겸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주목받기도 했다.

2019/04/07 - [Healthcare] - 기술로 혁신하는 건강보험- 클로버 헬스, 오스카 헬스 外

Source: Oscar Health

ACA 건강보험은 빈곤층과 중산층 사이에 위치한 저소득층을 위한 건강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빈곤층의 경우에는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중산층의 경우에는 보통 직장 건강보험으로 의료 혜택을 받는다. 계약직이거나 파트타임, 혹은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직장 건강보험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별도로 보험을 가입해야 하는데, 개인으로 가입하면 아주 비싸기 때문에 보험없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득 수준에 따라 보험금을 정부에서 일부 분담해주는 보험이 ACA 건강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에서 2012년 설립된 오스카 헬스는 플랫폼 기술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극 활용해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빠르게 늘려왔다. 모바일 앱과 온라인 서비스 이용률이 타 보험사 대비 매우 높은데 (모바일 앱 다운로드 비율 9배), 이를 기반으로 2017년 이후 매년 7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오스카는 24시간 원격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최초의 건강보험사라고 강조하는데, 가입자의 38% 이상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미국 평균 10%). 2020년 말 기준 15개 주에서 42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오스카 헬스는 상장 준비에 앞서 2020년 이미 두차례 대규모 투자(6월 $2억 2,500만, 12월 $1억 4천만)를 유치한 바 있다. 구글과 Tiger Global Management, General Catalyst, Khosla Ventures 등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자금을 통해 오클라호마, 아이오와 등 더 많은 주로 영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메디케어 어드벤티지, 중소기업 건강보험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적극적인 기술 활용으로 높은 가입자 만족도를 자랑하는 오스카 헬스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21년 오스카 헬스의 귀추에 따라 클로버 헬스(Clover Health)나 브라이트 헬스(Bright Health) 등 건강 보험 유니콘들 역시 상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오스카의 상장에 관심이 주목되는 이유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원격의료 스타트업들의 성장이 눈부시다. 이중 D2C 온라인 약국에서 시작해 이제는 온라인 종합병원을 표방하는 로(Ro)의 선전이 특히 돋보이는데, 로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다양한 고객군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로는 2020년 7월까지 원격의료를 통한 누적 진료 건수가 5백만을 돌파했다고 발표했고, 연간매출은 2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2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15억 달러(한화 약 1조 8천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 대열에 올라섰다.

로(Ro)는 2017년 남성용 온라인 약국 로만(Roman)을 통해 발기부전, 탈모 관리 서비스를 출시하며 사업을 시작했다.(사업 초기 내용은 작년 9월 포스팅에서 경쟁자인 힘스(Hims), 킵스(Keeps)와 함께 다룬 바 있다) 이후 빠른 사업 다각화로 한발 앞서나가기 시작했는데, 2019년 여성 대상 서비스 로리(Rory)와 금연 서비스 제로(Zero)를 출시하고, 올해 3월에는 코로나 진단 키트를 내놓으며 사업 영역을 확장해 현재는 20개 이상의 질환을 취급하고 있다. 때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원격 의료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폭발적으로 매출이 성장해 연간매출이 2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수익은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만(Roman)

로에서 2017년 처음으로 출시한 로만은 발기부전과 탈모 관리 서비스로 시작했다. 직접 내원하기 껄끄러운 질환을 원격의료를 통해 간단히 처방받고 약을 배달받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다. 편리성과 저렴함을 무기로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는 습진, 알러지, 다한증 등의 질환부터 체중 관리, 스킨케어까지 포함된 종합 의료 및 건강 관리 서비스로 확장되었다. 약품은 월별/분기별 정기 구독(subscription) 시 할인이 적용돼 재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로리(Rory)

여성용 서비스인 로리는 로만과 비슷하게 여성 질환에 집중하는 서비스로 헤르페스, 알러지, 갱년기 상열감등의 질환부터 속눈썹 증모제(latisse), 스킨케어 등을 취급하고 있다. 성별에 따라 브랜드를 분리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케팅과 패키징을 다르게 가져가는 점이 돋보인다.

제로(Zero)

개인화된 금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의사와의 온라인 상담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인화하고 이에 맞게 금연보조제 부프로피온(Bupropion)과 니코틴 껌을 배송해준다. 로는 제로가 의사 상담, 처방전 발급, 약품 구입, 앱 상에서 기록 등 전과정을 통합함으로서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더 효과적인 금연을 돕는다고 설명한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계속되면서 제로 서비스 주문이 전월대비 100% 상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 약국(Ro Pharmacy)

지난 3월 출시된 온라인 약국 서비스로, 월 5달러로 500가지가 넘는 처방의약품(복제약)을 판매하고 있다. 5달러는 배송비도 포함된 가격으로, 놀라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하고 있다. 아직 25개 주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지만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아마존이 필팩(PillPack) 인수를 통해 진출하기도 했고, 월그린스(Walgreens)와 CVS 등 기존 오프라인 강자들과 블링크(Blink), 메들리(Medly), 캡슐(Capsule) 등 스타트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시장이다.

수직 / 수평 계열화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로의 빠른 사업 확장은 원격의료 시장의 최근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투자 유치와 합병을 통해 경쟁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고, 대기업들은 인수를 통해 시장 진입을 엿보고 있다. 건강보험사나 대형 병원과의 제휴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판데믹 사태로 갑작스럽게 성장한 원격의료 시장을 선점하고자 치열한 물밑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의 이탈 장벽이 높아 선점 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로의 경쟁사 힘스(Hims)는 스팩(SPAC: 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을 통해 우회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09/29 - [Healthcare] - 남성을 위한 온라인 약국 - Hims vs Roman vs Keeps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면진료가 힘들어지면서 원격의료(Telehealth)가 폭발적으로 도입되며 지난 4월 기준 전체 의료 진료의 13%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336% 증가한 것인데, 2019년 4월에는 원격의료의 비중이 0.13%에 불과했다. 수 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한 분기만에 급격하게 일어난 것인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 기회에 원격 의료가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맥킨지(McKinsey) 역시 지난 5월 말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사태 이후 원격의료 시장이 30억 달러 규모에서 2,500억 달러(한화 약 30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지난 몇 달간 원격의료(Telehealth) 시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맥킨지 보고서에 기반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Source: McKinsey & Company Insights

미국인 46% 원격의료 경험 有 - 2019년 11%에서 급성장

2019년까지 원격의료 서비스를 경험한 미국인은 11%에 불과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엔 46%가 원격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의사들이 시행한 원격의료 건수도 평균적으로 50-175배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 원격의료 시장은 30억 달러 규모로 대부분 원격 응급 진료(virtual urgent care) 였는데, 일반적인 병원 내원으로 원격 기술이 확대되었다. 응급 진료(urgent care)는 갑자기 열이나 발진이 나거나 두통/복통 등 급성 질환이 발생했을 때 진료받는 경우라고 보면 되고, 우리 나라에서 말하는 응급실(emergency room)과는 조금 다르다.

인식에도 변화가 많이 생겨서, 미국인의 76%는 앞으로 원격의료를 사용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고, 의사들의 57%는 원격의료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런 움직임은 적어도 1-2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예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규제 완화로 허용되는 진료의 범위가 넓어진 점도 긍정적인 효과이다.

Source: McKinsey & Company Insights

병원 진료 / 가정 방문 치료 20%는 원격 의료로 대체 가능

맥킨지는 1조 2,500억 달러의 병원 진료 및 가정 방문 치료 비용 중 20%에 해당하는 2,500억 달러는 원격으로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에 따르면 응급 치료(Urgent care)의 20%, 일반 외래 진료(Outpatient)의 24%가 원격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하는데, 만성 질환 관리, 감기나 경미한 피부 질환, 정신 질환 치료 등이 대표적으로 원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치료로 꼽혔다. 가정 방문 치료는 35%까지 원격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 체중/체온 측정이나 환자/보호자 교육, 작업 치료나 언어 치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기존 의료 서비스 체계에 원격진료를 통합시키고, 데이터 분석 기술을 고도화해 정교한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발전해간다면 원격의료의 확산에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의 장점은 낙후된 지역에 필수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 응급실 이용과 대면 진료 비율을 낮춰 의료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알려진대로 미국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원격의료의 확산은 접근성을 높여 적절한 치료와 진단을 적시에 좀더 낮은 비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4월, 많은 병원들이 마스크와 의료용 가운 등 방호용품 부족과 배송 지연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비영리 병원인 노반트 헬스(Novant Health)는 드론으로 방호용품과 코로나 테스트 키트를 배송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집라인(Zipline)이라는 스타트업이 자체 드론을 통해 물류센터에서 병원까지 배송을 담당하는데, 왕복 약 30-50킬로미터 거리를 날아 소형 낙하산에 의료용품을 달아 투하하는 방식이다.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임시 승인을 받아 4월부터 배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료용품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배분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라인(Zipline)은 2014년 Keller Rinaudo와 두명의 창업자들에 의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되어, 의료 용품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배송하기 위해 드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집라인의 무인 드론은 약 2킬로그램의 화물을 싣고 최대 시속 110km로 왕복 160k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이들은 의료 용품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교통 상황이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르완다에서 2016년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르완다 정부와 계약을 맺고 혈액과 백신 등 긴급한 의료 용품을 배달하기 시작한 집라인은 현재는 르완다 수도 키갈리(Kigali)를 제외한 지역에서 전체 수혈용 혈액 공급의 70%를 도맡고 있다고 한다. 수십분 안에 혈액을 배송해 수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세밀한 냉장 보관이 필요한 혈액과 백신의 폐기를 줄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에는 가나에 4개의 물류 센터를 열어 서비스를 개시했고, 코로나 검사 키트를 배송 물품에 포함시켰다. 약 2천만 명이 집라인의 서비스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하며, 케냐와 잠비아 등 주변 아프리카 나라들도 드론을 통한 의료 용품 배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라인의 대표 Keller Rinaudo는 인터뷰에서 집라인의 목표는 지구상의 누구라도 15-30분 안에 긴급한 의료 용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도시 외곽의 병원들에 혈액과 백신 등을 적시에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집라인이 지난 4년간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한편 집라인은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세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 구글 벤처스 등 굴지의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지난 2019년 5월 기업가치 12억 달러를 인정받은 바 있다.

 

 

미국 내 코로나 사태로 환자 수가 대폭 증가하면서 병원의 인력/병상 등 가용 자원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에 대부분의 의료 기관과 보험사는 원격 의료를 적극 도입해 의료 수요를 분산하고 있고 미국 정부도 규제를 완화해 협력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메디케어를 관리감독하는 CMS(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사보험사가 관리하는 메디케어 어드벤티지(Medicare Advantage) 보험의 비용 처리에 대해 원격 의료를 통해 진단받은 경우에도 내원한 경우와 동일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대부분의 질환에 대해 대면 진료를 통해서 진단한 경우만 인정해 비용을 지급했다. 메디케어 어드벤티지 보험을 제공하는 사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원격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의 노령자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공공보험으로, 미국인 중 6천만 명이 가입되어 있다. 이들 중 36% 가량이 사보험사에서 대신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메디케어 어드벤티지(Medicare Advantage)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어 어드벤티지에 대한 설명은 이전 포스팅에서 설명한 적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메디케어 어드벤티지의 경우 연방 정부로부터 비용을 보조받는데, 치료 건수마다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다. 예를 들면 당뇨가 있는 70-75세의 남성의 경우 매월 1,300달러, 심혈관 질환이 있는 65-70세 여성의 경우 매월 1,400달러를 받고 기타 질환에 따라 추가 비용을 받는 식이다. 이 비용을 가지고 보험사들은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런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보험사들의 과잉진료를 막고 가입자들의 건강 상태를 최대한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환자의 질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보험사는 CMS에 의료 기록을 보내 승인받는데, 여러 까다로운 조건에 따라 승인이 거절되기도 한다. 일부 질환을 제외하고는 대면 진료를 통한 진단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원격 의료를 통해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 제한적이었고 이는 원격 의료의 한계로 이어졌다. 이번 응급 상황을 통해 CMS는 원격 의료의 경우도 내원 진료와 동일하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원격 의료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규제 완화를 기다리던 보험사와 원격 의료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확산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뀌는 뉴 노멀(New Normal)에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원격 의료는 그 중 한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상채팅으로 의사와 상담하고 처방받는 상황이 일상이 될 것이고, 병원과 의사들도 이에 발맞춰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04/11 - [Healthcare] - 메디케어, 원격 의료 규제 대폭 완화

2019/03/11 - [Healthcare] - 메디케어 vs 메디케어 어드벤티지(Medicare Advantage)

2018/12/20 - [Healthcare] - 미국 노년층을 위한 공공보험, 메디케어(Medicare)

지난주(3월 28일) 미국 내 실업수당 신청건수가 6백만을 넘었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전주의 3백만을 합치면 2주간 천만 명이 실직한 것으로 실업률이 9.5%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 시민들의 외출 자제를 권고하는 Shelter-in-Place 조치가 5월까지 연장되면서 실업률이 10%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직자들은 소득이 사라짐과 동시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 혜택을 잃게 돼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보험 미가입자 최대 4천만 명으로 천만 명 증가

헬스케어 컨설팅 업체 Healthcare Management Associates 는 실업률이 각각 10%, 17.5%, 25%인 경우를 가정해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추산했는데, 실업률이 25%로 증가할 경우 3천 5백만 명이 직장 보험을 잃게 되고, 이들 중 천만 명은 미가입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머지 2천 5백만 명의 대부분은 메디케이드(Medicaid)에 흡수될 것으로 예상했다.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보험으로, 경제 활황과 실업률 감소로 최근 2-3년간 가입자가 감소 추세에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다시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시나리오 별 건강보험 가입 예상 (Source: HMA)

메디케이드의 가입 요건은 소득의 비중이 가장 크며 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메디케이드 확장(Medicaid Expansion)을 선택한 주의 경우에는 그 조건이 더 관대해서 개인의 경우 연소득 17,236달러, 4인 가족의 경우 연소득 35,535달러 이하의 경우 가입 조건이 된다. 캘리포니아, 뉴욕, 뉴져지, 펜실베니아 등 36개 주와 DC(District of Colombia) 가 메디케이드 확장을 선택했다. 텍사스, 플로리다를 포함한 14개 주는 메디케이드 확장을 하지 않아 소득 기준이 훨씬 낮고 장애나 임신 등 별도의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실업률 상승으로 인한 보험 미가입자 비율은 메디케이드 비확장(Medicaid Non-Expansion) 주에서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디케이드로 보험 미가입자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치료 제공 노력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게 퍼진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인들이 검사비/치료비를 우려해 병원을 찾지 않은 점이 꼽힌다. 때문에 많은 주에서 주민들에게 메디케이드 보험을 통해 검사 및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애리조나와 아이오와는 메디케이드 보험료를 일시적으로 면제하고 연간 갱신을 하지 않아도 가입을 유지시키고 있고, 유타와 오클라호마는 메디케이드 근무 규정을 일시적으로 연기했다. (메디케이드 근무 규정: 일하지 않고 보험 혜택만 받는 경우를 제한하기 위해 여러 주에서 메디케이드 가입 조건에 일정 시간 이상 근무하거나 구직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앞서 메디케어(Medicare) 보험도 코로나 관련 검사 및 치료를 커버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보험 미가입자가 늘어나는만큼 코로나 확산을 저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이들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하고 있다.

2010년 오바마 케어의 출범 이후로 미국의 보험 미가입률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이들이 직장 보험을 잃게 되면서 건강 보험의 사각지대로 떠밀릴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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