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은 세계 어디를 가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보험 체제를 유지하는 미국에서는 특히나 다양한 보험 내용이 얽혀 사용자들의 불편이 크다. 그럼에도 여전히 UnitedHealth Group, Anthem, Aetna, Cigna 등 최소 50년 전에 설립된 회사들이 건강보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혁신 기업이 등장해 시장의 룰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정립해온 다른 산업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에 여러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며 건강보험 시장을 혁신하려 하고 있다. 아직 그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큰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보험 관련 스타트업에 이루어진 투자는 25억 달러로 전년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투자 유치 기업의 수는 차이가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유니콘 기업들의 등장으로 투자 라운드 자체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2억 달러 이상의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보험 관련 스타트업은 데이터 분석 업체 Cambridge Mobile Telematics, 기술을 접목한 건강 보험을 제공하는 Oscar Health와 Bright Health, 사용량에 따른 유동적인 자동차 보험을 제공하는 Metromile 등이다. 이들 모두 IT 기술을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고 보험료를 줄여준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등 빅데이터 기술이 상용화 수준까지 발전함과 동시에 비용이 낮아진 점, 의료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지고 있는 점, 새로운 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건강 보험 분야 스타트업 중 가장 주목받는 회사들로는 뉴욕의 오스카 헬스(Oscar Health), 샌프란시스코의 클로버 헬스(Clover Health), 보스턴의 디보티드 헬스(Devoted Health) 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모두 직접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있고, 뉴욕과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각각 구글과 피델리티(Fidelity), 구글과 세콰이어(Sequoia),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등 최고의 투자자들로부터 수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이미 유니콘의 대열에 합류했다.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기존 플레이어들에게도 경계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으로 적은 의사 네트워크로 최적의 치료 환경 제공, 원격 의료 기술 적극 활용 -> 비용 절감
보험사의 수익 구조는 단순하다. 가입자나 정부(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의 경우 정부 예산으로 지원)에게 매달 보험료를 받고, 가입자가 치료를 받았을 때 정해진만큼 치료비를 대신 지불하며, 그 차액만큼을 수익으로 거둬들인다. 따라서 값비싼 치료를 덜 받도록 하고 쓸데없는 관리 비용을 줄이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오스카 헬스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계약 병원(In-network)의 수를 줄이면서도 의료 서비스의 질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원격진료를 적극 활용해 메꾸는데, 가입자들에 24시간 전담 상담 팀을 제공해 병원 예약과 추천은 물론 간단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클로버 헬스는 의료 기록을 토대로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디보티드 헬스는 미국 정부에서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로 일한 DJ Patil을 영입하며 데이터 분석을 핵심 역량으로 개발하고 있다. 한편 클로버 헬스는 마인드메이트(MindMate)라는 앱과 협력해 노인 가입자에게 뇌 단련 게임을 통해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예측 모델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치료가 필요할 때는 원격 진료와 의료 서비스 최적화를 통해 싸고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안정적인 수익성 확보는 아직 먼 길
이들은 아직 큰 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수백 내지 수천만의 가입자를 확보한 대형 보험사들에 비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오스카 헬스는 2018년 말 기준 약 26만 명의 가입자들로부터 12억 달러의 매출과 5천 7백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클로버 헬스는 4만 명의 가입자와 4천 백만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UnitedHealth Group이나 Anthem 같은 대형 보험사의 4-5%의 영업이익률과 비교할 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반면 대체적으로 가입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 한다.
기술 접목에도 헬스케어 전문가는 필수
지난 3월 28일, 클로버 헬스(Clover Health)는 직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40명을 해고하고 이를 의료 및 건강보험 전문가로 대체할 것이라고 알렸다. 해고 대상자의 대부분은 기술 직종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클로버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메디케어 어드벤티지에 대한 이해가 깊은 전문가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많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CNBC는 전문가 Ari Gottlieb의 말을 인용하며 보험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종종 겪는 문제로, 성장하면서 헬스케어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위에서 언급된 스타트업들을 필두로 보수적인 건강보험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형 보험사들도 앞다퉈 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고 원격 의료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과감한 M&A를 통해 이들의 기술력을 흡수하고 새로운 건강보험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도 많다. 과도한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가 큰 만큼 변화의 흐름은 더욱더 빨라질 것이다. 이들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의 건강보험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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